Archive for Enero, 2009

학교급식 2009년 1월 30일

Viernes, Enero 30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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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연합의 원조 시기에 학교 스낵으로 달콤한 것들과 함께 받았던 청량음료를 모르는 사람들. 모든 것이 공짜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청량음료를 터뜨려 거품을 뿌리고 과자를 던지며 놀던 시기에, 우리는 그것의 중요함을 간과하게 되었다.
우리의 손에 구아바 과자와 달콤한 쿠키는 Salud 거리에 있는 Soledad 코너 근처의 작은 학교 발코니로부터 날아왔었다. 이 간식들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간식들이 없는 학교시간 중간에는 우리는 정오까지 배고픔에 지쳐갔다.

90년대의 경제 공황 초기에, 원조 물품 중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간식들이었다. 아이들은 병 뚜껑이 열리는 소리와 쿠키를 실은 트럭이
아침일찍 오는 소리를 더이상 듣지 못했다. 과자들을 던지던 추억은 수 많은 낭비에 대한 괴로움으로 다가 왔다.
부모님들은 학교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는 일을 맡아야만 했고 어느 누구도 언론에서 왜 정확히 그들이 음식제공을 중단해야만 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밟게 빛나고 사라지는 별* 2009년 1월 28일

Miércoles, Enero 28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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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수많은 방법들 중에서, “부재속에 빛”과 같은 아주 이상한 방법들도 있다. 어제 Granma 페이지에 쿠바기에 삼각형 모양의 중간에 다섯개의 하얀 별이 있는
자리에 도저히 놓칠수 없는 빛이 사진속에 남아 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 신무이 벌써 다팔리고 모두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명백하게, 이것은 별이 쉽게 없어질수 없기 때문에 프린트상의 오류로 볼 수 없다

나는 변덕스럽고 거만한 밝은 별이 우리의 자주성을 나타내며 마가렛 대처의 생일 전날에 사라지기로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발산하는 독립의 기운은
외부권력의 자연스러운 독립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강력한 국가의 자주민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손조차도 전혀 보지 못하는 시민 자유의 영역에서 이는 참으로 참담하고, 굳건한 별은 붉은 들을 돌보지 않고 당의 공식적 기관을 떠나
신문 일면에 부재의 상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수백번의 성공들보다 상징적으로 더 무게감이 있는 실수들이 있다. 잘 볼수가 없는 별들과 자신의 도주를 설명하는 독자들.
섬은 예언들과 미신들에 의존해 살고, 국가 영웅을 기리는 날들과 수 많은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을 감히 보여준 국기.

* 조세 마트의 글중에서, 원작의 대사는: 밝게 비추고 살해하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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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 2009년 1월 28

Miércoles, Enero 28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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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삽을 들고 삽질을 하는 것 부터 시작했다. 기차 선로를 받혀 줄 무거운 대들보를 심었다. 그의 아버지 또한 기차선로 직원이였으며, 삼촌은 심지어
화물차에 등나무를 실어서 공장까지 왔었다. 나는 무척 어렸고, 이미 그의 삶은 큰소리로 요란하고 자동차들을 실은 기관차의 여정에 한 부분이였다.
몇년이 지나고, 그는 마침내 쿠바교외를 달릴동안 그의 손들이 금속 나팔을 불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가 되었고, 기차선로에 수십년동안 종사하시면서 기나긴 가족 혈통을 채우셨다.

한번 이상은, 나는 내 스스로 이러한 기기들중 하나를 긴 길을 따라 운전해봤으며, 그가 나의 움직임을 감독해주고 나팔을 부는것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스페인 전까지 기차가 있었어” 나의 할아버지는 누군가 그의 일에 대해 물을 때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 내가 자랄때, 매 역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브레이크의 쇠 냄새를 맡으면서 나의 장난감 기차의 밧줄을 당기며, 작은 모형 소와 플라스틱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유럽에서의 사회주의의 붕괴는 장인정신을 퇴색시켰다. 많은 엔진들이 부품부족으로 멈춰섰고, 여행은 점차 더욱 멀리까지 가능하고 자주 연착되었다.
아바나를 떠나 산티아고로 향하는 것은 20시간 또는 3일이상 지연될 수 있었다.
작은 도시들에서는 자동차들은 제품의 일부분을 훔치는 가난한 농부에 의해서 공격받는다. 중앙역의 안내방송은 끝없이 반복한다.
“~행 열차는 ~ 취소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자리도 없이 남겨졌고 그의 동료들은 다양한 불법적일들을 통해서 생계를 꾸려 나가기 시작했다.

쿠바의 선로는 이 사고로 부터 아직 복구되지 못했다.
오래된 선로, 표를 사려는 긴 줄, 전체 직업의 감소 등은 이동수단이 최악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상태로,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스페인* 전까지 선로를 만드는 것을 멈출것이다” 라며 아버지는 비꼬듯이 말씀하셨다.
그의 시선은 그가 내리기 시작하는 휠에 고정되어 있나? 자전거 수리원으로서의 그의 새로운 직업? 그러나
조금 더 멀리 본다면, 그의 시선은 이 길고 좁은 섬을 따라 그가 안내하는 철덩어리들에 고정되어 있다.

번역자 주
“Lokomotiv”는 소련시기 기관차
“The Peninsula”는 쿠바사람들이 스페인을 가르킬 때 쓰는 단어

희생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2009년 1월 26일

Lunes, Enero 26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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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서 있는 남자로부터 숨어서 하루종일 겁에 질려서 있을 수 있다. 나는 어쩌면 이 페이지들을 나를 위험한 사람이라고 “경고”를 하는 사람들의 증언들과
이 블로그에 쏟았던 내 노력들로 채울수 있을 것 같다.
내 모든 글들이 긴 불평이거나 밖에서 나의 잘못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비난이라고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스스로 나는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침묵했고, 나는 몇몇들이 나의 섬을 마치 그들이 대농장을 경영하는 것처럼 지배하게 놔두었다. 나는 다른사람들이 만든 결정들이 우리 모두를
지배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척 했고 받아 들였고, 반면에, 나는 너무 어리다는 것과 너무 연약하다는 사실뒤에서 숨어서 내 스스로를 보호했다.
나는 내 마스크를 쓰고 내 아들과 가족을 이용하여 감히 나에게 대들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쓴 것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환호 했고, 내가 싫증이 났을 때 내 조국을 떠났으며 내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뀌기를 시도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 말했다.
나는 또한 내 인생에 지워진 깊은 원한과 의심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가져가야 한다.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뗏목은 나의 욕망을 자주 충족 시켜준
망상을 감내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내스스로 희생자라고 느끼지 않고 나는 내 스커트를 조금 올리고 나의 다리를 나를 따라 어디든 오는 두 남자들에게 보여준다.
길 한복판에서 태양에 반사되는 여자의 종아리 만큼 남자들을 마비시키는 것은 없다.
나는 순교자처럼 목석은 아니며 웃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킥킥거리는 웃음은 권위주의자의 치아에서 딱딱한 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보채지 않고 오직 한 가지 후회와 함께 나의 인생을 이어갔다. 궁극적으로, 내가 오늘을 살면서 얻은 모든 것들은 나의 침묵의 산물이며
무저항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낙천주의자들 2009년 1월 23일

Viernes, Enero 23r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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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중반, 줄리토는 8월전에 돼지고기가 1파운드에 평균 노동자의 하루 월급인 10페소에 팔릴 것이라 확신시켰다. 그의 예측이 맞지 않자, 그는 지난 1월
고기 할인의 정확학 날짜를 맞춘것에 대해 소리쳤다. 그의 영원한 웃음과 함께, 그는 우리가 여름철까지 귀중한 고기를 싼가격에 얻을 수 있다고 확신 시켰다.
그때에 허리케인이 찾아와 내 이웃의 예상은 슬픈 예언으로 변했고, 오히려 그 이상으로 안타까운 해로운 천진함 이다.
나는 몇 주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의 과도한 승리주의를 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어제, 줄리토가 내가 사는 층으로 와서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의 젤 어린 딸이
그 둘은 미국여러 도시중 한곳에서 재회하기로 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헤어짐에 대해 슬퍼하기 보다는 그의 딸의 미래에 때문에 행복해 했다.
우리집 거실에 앉아서 그는 그와 그의 부인이 가족중에 망명한 사람들과 재회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우리는 더욱 쓸모 있을거야”라고 내게 이미 결정을 한 듯한 사람의 어투로 이야기 했다.

나는 그에게 그가 고기세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가족화합하는 곳으로 뛰어가라고 요청했다.
나는 부모로서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 대한 농담을 신경쓰지 못한 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지난 낙천주의를 무시하고, 그가 나에게 주었던
예상들과 심지어 나의 의심스러운 면인 “비관주의”의 칭찬으로 인한 피곤함을 용서해 주었다. 줄리토는 비행기의 문에서도 그의 비판을 계속해서 받아 들일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다음에 보스톤에서 만약 그가 이 블로그를 읽는다면 그는 아마도 내게 이메일을 보내어 그가 한번도 아무것도 믿지 않았고, 그는 그저
나처럼 회의론자라 고백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2009년 1월 20일

Martes, Enero 20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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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스트모던적이고 의심이 많다: 연설은 나를 잠들게 했고 연단위에 서있는 지도자는 나에게는 지루함의 최정상이었다.
나는 비타협적인 태도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적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소리쳤던 웅변을 칭찬했다. 공공행사에서는 나는 항상 빠져 나오기 일쑤고,
나는 정치인의 약속보다는 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더 선호한다. 나는 너무도 많은 장황한 이야기들을 들었기에 새로운 연설을 듣기에 접합한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는, 연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화합 보다는 편협함을 더 가져오고, 화합에 대한 요구 보다는 분노를 더욱 돋구었다.
연단으로부터 나는 전에는 없었던 침략의 예상과 경제정책을 보았고, 심지어 표현들이 차별적으로 “낙엽찌거기들을 치워버리자, 낙엽들!” 같이 들렸기에
나는 그의 화합에 대한 기원과 조심스럽게 만들어진 주장들과 함께 바락 오바마가 들려준 평온한 연설이 무척 혼동되었다.
나는 티비를 볼 수 있는 불법 위성접시가 없기 때문에 읽었을 때, 그가 마치 모든 20세기 남겨진 모든 수사학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몸서리쳐지는 웅변에 작별인사를 고했다. 나는 단지 그것이 “우리는 사람이다” 오늘부터 연설들을 쓸.

와서 살아봐 2009년 1월 19일

Lunes, Enero 19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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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여행 관광 중 하나에 의해서, 섬으로 관광객들을 이끌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자연에 감사하는 생태 여행도 아니고
나라의 광장과 기념물의 역사 관광도 아니다. 쿠바사람으로서 머물러라 정도가 이 여행 캠페인의 슬로건이 될 수 있겠고, 미리 가능한 관중들에 대한 관심 부족을
비난할 수도 있다. 와서 살아봐 는 이 모험을 시작할 모든사람들에게 주어질 책의 제목이 될 것이다.

우리 관광 주최자가 중앙 하바나의 음침한 방,Buena Vista의 셋방, 허리케인 피해자를 위한 비좁은 피난소등을 제안 한 후부터,
숙박시설은 Varadero 또는 Cayo Coco 에 있는 호텔 방처럼 비싼 방이 아니다. 이 패키지를 사는 관광객들은 유동 화폐를 쓰지 못하지만 2주 동안 쓸 비용은 한 달 월급의
반 인 300 쿠바 페소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화 전용 택시를 탈수 없고, 렌트카를 몰아야 한다. 대중 교통의 이용은 이 새로운 여행 방법의 의무사항이 될 것이다.

레스토랑은 이 여행 이용개들에게 금지 되고, 그들은 80그램의 빵을 매일 받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전에 225그램의 물고리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질지도 모른다.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기 위해서 Viazul을 방문할 수는 없지만, 티켓을 3일 동안 기다리는 대신에 그들은 오직 하루만에 티켓을 구할수 있는
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요트를 타거나 서핑보트 이용이 금지 되서 여행객들은 그들의 체류가 90마일 떨어진 케리비안 “파라다이스”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쯤에는, 이 위험을 감수하는 여행객들은 “쿠바 현실의 전문가” 학위를 되지만, 우리의 불합리한 일상에 “적응된” 것으로 여겨 질려면 몇 번은 더 와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더욱 마르고, 슬프고, 그들의 나라 슈퍼마켓에서 살수 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광 홍보에 대한 끔찍한 혐오감을 갖고
떠날 것이다. 쿠바의 물라타스들, 럼주, 음악 과 댄스를 보여주는 황금 광고는 무너지는 건물들, 좌절, 그들이 이미 잘 알고 잇는 관성의 파노라마를 숨길 수 없을
것이다.

번역자 주
300 쿠바페소는 약 12달러 정도 이다.

가능한 세상이 더 낫다 2009년 1월 17일

Sábado, Enero 17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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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는 미래의 전망과 함께, 오늘을 실현시키는 꿈을 향한 오늘을 시작하는 전망에 기대어 본다. 나는 벌써 내일을 향해
집중하고 있고, 입 한가득 가능성으로 가득찬 숨을 쉬고 있으며, 곧 올 환상을 믿는다. 이 시점에서, 나는 오직 가능한 것에만 건다.
나는 침대 밖으로 나와 더욱 실제같이 보이려고 우리가 TV에서 많이 보았던 터무니 없는 슬로건들 중 하나를 뒤집어 본다.
가능한 세상이 더 낫다고 내 스스로 이야기 해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룰것 이라는 느낌을 갖기 시작한다.
지구와 나의 섬, 나의 도시는 또다른 유토피아의 연발이 아닌 실현 가능한 해결책들을 찾을 것이다

아가씨 사랑해 2009년 1월 16일

Viernes, Enero 16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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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1시간 반이나 늦은 몇몇 친구들을 중앙 파르크에서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힘겨운 하루였기에 누구와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20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 옆에 앉았다. 그는 영어를 잘 못했지만 내게 어디 출신인지 그리고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객꾼들을 찾고 있지 않지만 그가 실패한 유혹의 기술을 쓰게 놔두었다.

나는 나의 하얀색 피부가 스페인 조부모님들로 부터 물려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여권은 그가 가진것처럼 파란색에 쿠바 사람이다. 만약 내가 외국인이라는
잘못된 그의 인상이 아니였다면, 그는 내게 절대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하게 그도 보았겠지만 나는 좋은 결혼상대자가 못된다. 내가 가난한 외국인 처럼
보일 지라도, 적어도 나는 그에게 이주할 수 있는 비자를 얻어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계산했다. 내 침묵에 고무되어, 그는 내게 영어로 “사랑해, 아가씨” 라고 말했고
이러한 사랑고백을 이후에 나는 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아는 가장 심한 하바나 속어를 말했다. “내게 시간 낭비 하지마, 나는 쿠바인이야”
그는 불개미한테 물린양 깜짝 놀랬고, 나를 모욕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고함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니 피부는 너를 외국인 처럼 보이게 하지만 너는 이곳 출신이고,
국가 돈보다 가치가 없다”. 나의 하루는 갑자기 바뀌었고 나는 공원을 꾸며주는 마르티 대리석으로 얼마 안 떨어진 벤치에 혼자 앉아서 웃기 시작했다

실망한 카사노바에게 두번째 결혼 상대자가 빨리 나타났다. 바로 옆에 있던 북유럽 여자에게 그는 엉성하게 내게 했던 그 말들을 되풀이 했다. 그녀는 웃었고
그의 젊음과 색깔 구슬로 마무리되는 그의 땋은 머리에 압도 당한듯 했다. 나는 그들이 같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 언어적으로 몇 마디도 채 모르는 그이지만,
당당한 그의 젊음이 사랑을 만들어 주었다.

번역자 주:
이 글의 원제는
호객꾼이다.

축하의식과 다진고기 2009년 1월 13일

Martes, Enero 13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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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 초부터 반세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 쿠바 사람들은 할당제도를 통해서 소고기 반근을 살수 있게 되었다. 쿠바 사람들은
좋은 유머감각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체제에서도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다. 이러한 유머감각은 예상할 수 없게 맛있는 소고기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차베스가 보낸 소고기”라고 부르는데, 이는 베네수엘라로 부터 오는 경제적지원에 관한 것이다.

사회적 혁명의 중대성의 정치적 과정은 고무 되어야만 한다. 50주년을 맞아서, 더욱 야망적인 결과와 더 많은 거만한 당들과, 그러나 별로 줄 것이 없다
이러한 것들이 천박해 보일 지라도, 많은 쿠바사람들을 위해서 소고기 판매는 요즘 일어 날수 있는 일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맛은 우리들이 가능한 발전과 개혁의 약속조차 없었던 회색의 12월과 똑같이 야윈 1월의 나날들을 기억나게 만든다.

번역자 주:
1. picadillo는 소로 부터 나온 고기를 여러가지를 재료를 합쳐서 만든 고기
2. 할당제도: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음식을 특정장소에 가서 할당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10일치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나머지 부족분은 굉장히 비싼가격으로
식품을 사야한다
3. 휴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매년 쿠바에 9천만 달러의 원조를 보낸다. 이에 쿠바는 매년 베네수엘라에 4만명의 노동자를 보내는데
그중 3만명은 의사이고 나머지는 선생님들이다. 차베스는 매년 2십만 달러이상의 봉급을 의사들에게 지급하는데, 보통 베네수엘라 의사들은 매년 1만~2만달러를
벌고, 쿠바 의사들은 매달 백달러정도 받는다.